/소풍을 갔다 돌아오는데 배낭이 없어졌다는 걸 알았다. 찾을 길이 막막하여 걸음을 되돌리진 않았다. 집으로 오니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밥은 먹었느냐고 물으셨다. 지금의 나보다 젊은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낯으로 내 안색을 살폈다. 배낭은 찾을 수 있다고, 어차피 중요한 것도 들어있지 않다고, 나는 거짓말을 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왔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벌써 아침이었다.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도 모르겠는데, 이미 꿈에서 쫓겨나 있었다.
하고싶은 말을 뒤집어보니
하지말아야 할 말이더라
가기싫은 길을 뒤집어보니
덧없는 욕심이더라
잊을 수 없는 사람을 뒤집어보니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이더라
너의 침묵을 뒤집어보니
이별이 선명하더라



휘영청 지구가 기울고 하루가 저물어갈 때
날개도 없는 마음이 파닥인다.
무거운 것들이 서로를 끌어당기고 가벼운 것들이 서로를 스칠 때
역사도 없는 사랑이 출렁인다.
많은이야기를 했으나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으로
천천히 블라인드를 내린다.
모습은 희미해지고 체취는 또렷해지고
나는 갓 태어난 무엇처럼 서투르게 휘몰아치고 날린다.
끝내 지상에 닿지 못하고 흩어져버릴 눈보라처럼.
오랜만에 만난 탓에 끝날 줄 모르고 이어지는 그의 근황을 한참이나 듣다가, '난 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가 아니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가 궁금해' 라고 내가말했다고, 그러자 그가 깊은 한숨을 쉬며, 요즘 힘이 들어, 대답했다고, 나는 까맣게 잊고 있던 그날 우리의 대화를, 오랜만에 만난 친구한테서 듣고는, 누가 어딜 들어갔는지 나왔는지 이사를 갔는지 결혼은 했는지 툭하면 잊어버려 무심하다는 소리를 종종 듣고 있는 나로서는, 뭔가 변명거리가 생긴 것 같아서, 응, 언제나 궁금한 건, 네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혹은 견뎌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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