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당신도 서로의 밤에 침입해 어느 페이지라도 할 것도없이, 손에 잡히는대로 열렬히 서로를 읽어나간 것이겠죠. 내게는 사랑에 대한 첫 독서가 당신이란 책이였고 . 행복했고 열렬했어요 . 어느 페이지는 다 외워버렸고 어느 페이지는 다 찢어없앴고 . 어느 페이지는 슬퍼서 두 번 다시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지만 . 어쨌든 즐거웠습니다. 소란, 박연준 모든 병든 개와 모든 풋내기가 그러하듯 나는 내 운명 앞에서 어색하지 그지 없다, 그대를 오랫동안 품에 안았으나 내 심장은 환희를 거절하고 우울한 예감만을 가슴 복판에 맹렬히 망치질 하였다,우연이란 운명이 아주 잠깐 망설이는 순간 같은 것, 그 순간에 그대와 나는 또 다른 운명으로 만났다, 그런 운명과 우연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있다 한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가 당신을 붙잡을 때도 있었지만 사실은 휘청거릴 때마다 우리는 손을 부여잡고 있었습니다그 때 당신과 내가 바래다 준 산은 엎어지지 않고 돌아눕지도 않고 강물에 담근 발목을 뒤척이며 잘 있더군요 시간의 진화옛날 시계 분침보다 시침이 더 길었다는 사실분 따위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분침 따위 무시해도 좋은 잔챙이였다는 사실그런 분침이 지금 시침을 졸병으로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그렇게 사람들이 야금야금 시간을 다 파먹었다는 사실이대로 가다간 초침이 제일 길어질 날 올 거라는 사실 문상가긴 꼭 가야하는지 물었습니다. 어디로 가시려는지, 뒤를 한번 돌아봐 주면 안 되는지 물었습니다. 가는 길이 춥지는 않으신지, 그 말은 왜 끝내 안해주셨는지 물었습니다. 내일도 어제처럼 바람 불고 비 오는 날인지, 갈 때는..